"한인사회의 친구…당선되면 한인 부시장 임명"
케빈 드레온 LA시장 후보는 이번 시장 선거에서 핵심 이슈가 ‘노숙자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노숙자 문제가 악화일로인 데 대해 그는 “말뿐인 정치인이 많아서”라고 잘라 말했다. “액션이 없는 정치인은 무용지물이다. 비판과 지적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인이 허다하다. 말만 하고 액션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인타운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노숙자 문제”라며 “LA 시장으로서 반드시 이 문제 척결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관할하는 14지구는 LA시에서 노숙자 인구가 가장 많다. 지역구 한 곳이 뉴욕과 시카고 노숙자보다 많다. 드레온도 노숙 경험이 있다. UC샌타바버러에 진학한 그는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했다. 갈 곳 없던 그는 친구들 소파에서 자거나 차에서 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나 역시 노숙 경험이 있어 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내 관할지역에 스키드로가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드레온 시의원이 최근 선보인 하일랜드파크 노숙자 주거 시설 ‘타이니 홈 빌리지(Tiny Home Village)’는 2인 1실 117유닛 구조로 설계됐다. 각 방은 모두 잠금장치가 마련돼 있다. 24시간 시큐리티 체제까지 갖춰 매우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220명의 노숙자가 입주했다. 그는 직접 며칠 동안 이곳에서 숙식을 했다. 노숙자들이 살기에 정말 안전한지, 음식이 제대로 나오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하루 3끼를 제공하고 2인 1실이라 텐트보다 훨씬 안전하다. 무엇보다 난방시설까지 갖춰 따뜻하다. 샤워 시설과 화장실도 모두 마련돼 있다”고 했다. 기존 노숙자 셸터들이 줄줄이 실패한 것에 대해 “방과 잠금장치가 없어 안전과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데, 누가 셸터를 좋아하겠나. 노숙자 부부, 자녀를 둔 노숙자 가족도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LA에 있는 빈 상가건물들을 노숙자 주거시설로 전환하면 노숙자 수를 급속도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예산은 충분히 있다. 문제는 효율적인 지출이다"고 했다. 그는 개발사 측과 자주 싸우며 이번 프로그램 건축비를 대폭 깎아내렸다고 했다. 시의회 입성 직후 그는 ‘어 웨이 홈(A Way Home)’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주도해 통과시켰다. 오는 2025년까지 LA시에 2만5000 유닛 이상의 노숙자용 주택을 건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다 가주환경법(CEQA)이 개발업자들의 주택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하자 그는 "가주의회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CEQA가 얼마나 개발업자의 손발을 꽁꽁 묶는지 알게 됐다"며 "억만장자들에게만 예외조항을 적용해 혜택을 주고 있는데 반드시 환경법을 완화해 개발업자들 숨통을 트이게 하고 중산층이 보다 수월하게 주택을 사고 세입자들이 보다 저렴한 렌트비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인·아시안 캐스팅 보팅 드레온 시의원은 한인사회와도 인연이 깊다. 상원의원 시절 관할지역에 한인타운이 모두 포함돼 있었으며, 한인 유력인사들과 오랫동안 유대관계를 이어왔다. 2017년 상원의장 시절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기도 했다. 스태프에 한인도 여러 명 임명했다. 과거 벤 박과 존 최에 이어 현재 브라이언 황보를 보좌관으로 두고 있다. 이에 앞서 최초의 주정부 한인 커미셔너로 에린 박 씨를 임명했다. 현재 그의 선거 캠페인 매니저도 한인 입양아 출신 코트니 푸다. 드레온은 "나는 한인사회의 막역한 친구다. 당선되면 한인 부시장을 반드시 임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예선을 앞둔 그는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 표가 승부를 가를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예선은 6월 7일, 톱2가 진출하는 본선은 11월 8일에 실시한다. 최초 아시안 시장 탄생? 라틴계로 알려진 그는 당선되면 LA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 시장이 된다. 드레온도 자신의 아버지가 100% 중국인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의 라스트 네임에 출생 스토리가 담겨있다. 출생증명서와 유권자 리스트에 적힌 그의 이름은 ‘케빈 드레온(Kevin de Leon)’이 아니다. ‘케빈 알렉산더 레온(Kevin Alexander Leon)’이다. 1966년 12월 10일 사우스 호프 스트리트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병원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이름도 나온다. 안드레 레온(Andres Leon).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직업이 요리사였다. 부모 출생지 모두 과테말라다. 드레온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기였을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대외적으로도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았다. 싱글맘이었던 어머니에게 자신의 출생에 관해 묻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멕시코 티후아나와 바하 칼리포니아에서 자라면서 멕시코 문화에 더 익숙했다고 한다. 그가 라스트 네임을 바꾼 것은 대학 때다. 대학 친구 한 명이 느닷없이 ‘너 아빠 없지?’라고 물어본 것이다. 그는 ‘맞아. 나 아빠 없어’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의 머릿속에 ‘아버지(father)’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아버지가 나와 성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처음으로 의식됐다. ‘아버지를 알게 되면 내 인생이 달라질까’ 자문하게 됐다." 이때부터 그는 라스트 네임 앞에 스페인어인 ‘de’를 붙였다. ‘de’는 한국어로 ‘의’ 영어로 ‘of’를 뜻한다. 아버지와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어 이렇게 붙였다고 했다. "사생아로 알려지는 게 싫었다. 나의 뿌리를 찾고 싶었고 알고 싶었다. 누군가에 속해 있다는 것은 좋은 것 아닌가. 그 느낌을 받고 싶어 내 이름을 바꿨다. 아버지와 그 어떤 관계도 일절 없어 그런 마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문서에 서명할 때만 ‘드레온’이라고 쓸 뿐 출생 증명서를 비롯해 유권자 명단에는 여전히 그의 출생 당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아버지와 극적인 재회 아버지가 샌디에이고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만나지 않았다. 정계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있고, 100세 정도 됐다는 말을 지인을 통해 들었다. 생부가 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갑자기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지난해 샌디에이고에서 그는 아버지와 극적으로 재회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였을 때 이후 처음 본 것이다. "살면서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왜 없었겠나. 하지만 아버지 나이가 100세였다. 고령이어서 나와 소통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와 다시 만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도 아들을 만난 감격이 컸다. 몇 개월 뒤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반면 어머니 덕분에 오늘날 내가 있을 수 있었다"며 먼저 하늘나라에 간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했다. 드레온은 현재 싱글이다. 성인 딸 한 명을 두고 있지만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당선되면 최초의 싱글 LA 시장 기록도 세운다. ※드레온 후보 약력 -피처 칼리지 졸업 -가주 하원 45 지구(2006-2010) -가주 상원(2010-2018) -가주 상원의장(2014-2018) -연방상원 출마(2018년 본선 진출) 원용석 기자한인사회 부시장 노숙자 문제 노숙자 주거시설 하일랜드파크 노숙자